선물거래소의 역사

2020. 11. 10. 23:41
반응형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선물거래와 비슷한 형태의 거래는 꽤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선물의 개념에 해당하는 거래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유사한 거래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17세기 경의 일본 오사카 상인들이 고안한 '도지마 쌀 시장'을 들 수 있습니다.

 

다만 현대와 같은 근대화된 형태의 선물 거래소는 시카고의 농산물 거래와 런던의 금속 거래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가장 처음이 1848년 시카고 상품거래소로, 채 200년이 되지 않았네요.

 

이번 글에서는 이 두 가지의 선물거래소에 대해서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선물 거래소 역사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 시카고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 CBOT)

 

 

근대의 상품 선물거래소는 1848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시카고는 19세기 중반 일리노이와 미시간의 운하 개통으로 미국 중서부 곡창지대의 중심지인 동시에 곡물의 집산지가 되어 곡물 거래가 활발했습니다. 1848년이 되자, 새로운 운하와 철도 인프라가 시카고를 중심으로 완공되어 5 대호를 미시시피강과 연결하여 시카고를 농산물 상업의 핵심 허브로 만들었습니다.

 

출처: wikipedia.org

 

하지만 거래물량에 많다 보니, 창고와 운송시설의 부족, 계절 요인, 작황 정도에 따라서 곡물의 수급이 오락가락하고 가격이 급변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거죠.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상인들은 선물시장을 고안해 냈습니다. 물건을 눈으로 보기 전에 미리 가격을 정해서 사고 팔자는 것입니다. 즉 자연재해, 작황 등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고, 운송수단이 부족하여 화물이 도착하지 않아도, 매매 가격과 인도시점을 미리 정해놓고 결제이행을 거래소가 보증해 주도록 하여 안정적인 공급과 수익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카고에 세계 최초로 상품 선물 거래소, 시카고 상품거래소 (Chicago Board of Trade, CBOT)가 설립되었습니다.

 

Photo by Benjamin Rascoe on Unsplash

 

 

CBOT (Chicago Board of Trade) - CME Group

CBOT (Chicago Board of Trade) is a designated contract maker for CME Group, offering products under CBOT rules. Learn more.

www.cmegroup.com

 

중앙 집중 곡물거래소의 출현은 농부와 곡물 생산자들이 추수 전에 수확물을 확정된 가격에 팔 수 있게 만들었으며 소비자들은 곡물을 연중 내내 투명한 가격에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 상인: 선물 시장을 통해 곡물을 미리 구매하여 가격이 크게 올라 손해를 보거나 제때에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 방지
  • 농부: 미리 팔아 놓아 작물을 수확한 다음에 작물이 팔리지 않아 손해를 보는 일이 감소

 

처음에는 신용을 바탕으로 거래되었으나 1965년 선도계약의 담보로서 증거금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근대적 상품거래소로 발전하였습니다. 즉, CBOT는 1865년에 표준화된 선물계약을 도입하게 됩니다.

 

중앙집중 청산 방식의 계약은 매수자와 매도자에게 이행보증금 또는 증거금 납부를 통해 보장이 되는 신용과 안전을 보장하였으며, 그 결과 결제불이행으로부터 시장을 안정화시켰습니다.

 

현재 전 세계 곡물의 80% 이상이 시카고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2. 런던금속거래소

 

영국에서는 약 140여 년 전 선물거래소가 등장하였습니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영국의 산업 혁명은 산업 구조를 변화시켰습니다. 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자급으로 가능하던 철광석 등의 금속은, 이제는 공급 부족으로 수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금속의 가격 변동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칠레 등에서 금속을 수입하였는데, 칠레에서 구리를 싣고 오는 배가 영국에 도착하기까지는 3개월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입업자들은 도착 날짜와 도착 일자의 금속 가격을 알 도리가 없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증기선의 발명과 무선 모르스 부호 통신이 개발되어, 칠레에서 출발한 배의 소식을 런던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금속 화물의 도착 일자 예측이 가능해져서 상인들은 미리 가격을 확정하여 예정일자에 금속을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상인들은 매일 원활하게 금속을 거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그리하여 1877년 1월 1일 런던에 LME (London Metal Exchange, 런던 금속 거래소)가 설립되었습니다.

 

 

 

 

London Metal Exchange: Home

Setting the Global Standard The London Metal Exchange is the world centre for industrial metals trading. The prices discovered on our three trading platforms are used as the global reference price and both the metal and investment communities use the LME t

www.lme.com

 

지금도 전 세계의 금을 포함한 거의 모든 금속, 귀금속, 철, 비철 금속 등이 런던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3. 금융(주가지수) 선물 거래는?

사실, 선물이 각광을 받게 된 중요한 계기는 1970년대의 외환, 통화와 같은 금융자산에 대한 선물거래가 도입되면서부터입니다. 우리가 체감적으로 와 닿는 것은 아무래도 주가지수 선물이겠죠?

 

주가지수 선물거래란 증권시장에서 매매되고 있는 전체 주식 또는 일부 주식의 가격 수준을 나타내는 주가지수를 매매대상으로 하는 선물거래입니다. 주가지수는 실물이 없기 때문에 최종결제시 현금 결제된다는 점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통 거래하는 (혹은 할 가능성이 있는) 주가지수선물 거래는 어제 시작되었을까요?

 

생각보다 역사가 깊지는 않습니다. 주가지수선물은 1982년 미국 내 선물 거래소에 출시되었으며, 이후 선물거래시장에서 금리 상품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섹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실, 주가지수선물의 개념은 1982년 이전부터 논의되고 분석되었으나 다양한 규제 사안과 지적재산권 문제로 출시가 늦어졌습니다.

 

1982년 2월 미국의 캔자스시티 상품거래소(KCBT)에 의해 최초로 도입되었고, 이후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다른 선물거래소에서도 다투어 주가지수선물거래를 도입하였습니다.

 

 

 

1982년 4월에는 시카고상업거래소(CME, Chicago Mercantile Exchange)에서 그 유명한(!) Standard & Poor’s 500(S&P 500) 지수를 토대로 한 선물 및 기타 다른 주가지수 상품이 출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5월에는 뉴욕선물거래소(NYFE ; New York Futures Exchange), 1984년 7월 시카고상품거래소(CBOT)가 주가지수선물거래를 도입하는 등 주가지수선물거래는 단기간 내에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금융선물이 크게 성공하자 1980년대에 들어서 영국 싱가포르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이 차례로 자국의 선물시장을 개설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현재 풍부한 유동성을 가진 다양한 선물 상품들을 기관투자자 및 개인투자자들에게 제공하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금융 선물거래가 상품 선물거래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4. 우리나라의 선물 거래소는?

우리나라에서는 제1차 석유파동을 겪고 난 후인 1974년 12월 26일 조달기금법, 조달기금법 시행령, 주요 물자 해외선물거래 관리규정이 대통령령으로 공포되면서 선물거래 전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듬해 2월 20일에 첫 선물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1995년 12월 29일 선물거래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상품선물거래에 대한 규제업무는 조달청에서 담당해 왔습니다.

 

1996년 한국증권거래소가 코스피 200 주가지수를 거래대상으로 하는 코스피200 선물을 상장하면서 최초로 거래소 형태의 선물거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증권거래소는 1997년에 코스피200 옵션을 상장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선물거래소가 부산에 설립되면서 미국 달러선물, 미국 달러옵션, 금 선물 등을 상장하여 투자자에게 제공하였습니다.

 

 

 

2005년부터는 기존 코스피시장(한국증권거래소)과 코스닥시장(코스닥증권시장), 한국선물거래소가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통합되어 모든 선물상품을 취급하고 있으며, 20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과 함께 새로이 한국거래소(Korea Exchange·KRX)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주가 현황판에 자주 등장하는 KRX

 

 

한국거래소의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한때는 전 세계 1위의 거래량을 자랑할 때도 있었습니다.

 

2011년 기록입니다.

 

그런데 과도한 투기성 거래를 줄이겠다는 명목 하에, 승수를 올리고, 교육 시간도 추가하는 등 각종 규제에 따라 개인들의 접근성이 제한되면서 현재는 유동성이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세계 1위' 파생상품시장은 옛말…거래 5년새 급감 | 연합뉴스

'세계 1위' 파생상품시장은 옛말…거래 5년새 급감, 김재홍기자, 금융.증권뉴스 (송고시간 2017-01-21 23:10)

www.yna.co.kr

 

최근에는 다시 접근 제한을 다소 낮추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무리

이번 글에서는 선물거래소의 역사에 대해서 가볍게 알아보았습니다. 실제 거래에서 이득을 보느냐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상식 차원에서 정리해보았습니다.

 

반응형